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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그리스 여행(미케네,아크로코린트,에피타우로스 극장.3.24일)

낙산유정 2024. 3. 25. 14:39

다녀온 곳
1.미케네 유적지및 박물관 (0900-1200)
2.아크로코린트
3.에피타우로스 극장


[미케네 유적지.3.24일 오전]


미케네 문명은 BC 1600-1200년 사이에 형성된 청동기 문명이고  그리스적인 요소와
미노스적인 요소를 결합이 된 새로운 문명이다 미케네인들은
BC1400년경 크레타를 멸망시키고 에게해 섬들을 정복하여 동 지중해를 장악했다.
트로이 전쟁(BC1250년 또는 1183년)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그리스 원정군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은 미케네의 왕이라는 점에서 미케네가 그리스
동맹군의 중심이었음을 알수 있다.
철기 문명을 지닌 도리스인이 BC1200년 경 남하하여 미케네의 쇠퇴가 시작됐으며
BC1100년경에 멸망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미케네의 건축은 성채와 무덤 중심의 호전적인 전쟁 문명으로 언덕에 있는 성채와
건너편 언덕에 있는  아트레우스 보물창고로 불리는 무덤이 주요 볼거리다.


(미케네 성채)

 

미케네인들은 Argos평원을 통치하기 위해 언덕 위에 성채를 건립했다. 전설에 따르면
제우스와  Danae의 아들 Perseus가 미케네를 발견했다고 한다. 성채를 쌓기 위해
Persus는 외눈박이 거인 Cyclopes를 고용했다고 하며, 이러한 연유로 미케네의
거대 성벽을 키클롭스의 성벽(Cyclopean wall)이라고 한다.  미케네 성채는
BC 1350,1250,1225년 세 차례에 걸쳐 건축되었다고 한다.미케네의 성벽은
많이 다듬지 않은 다각형의 큰 돌로 쌓은 것이  특징이다. 사자문을 들어 서면
오른편에 GRAVE CIRCLE A라는 BC16세기에 조성된 왕족들의 무덤群이 있다.
1876년에 하인리히 슐레이만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황금가면등 주요 출토품은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슐레이만은 아가멤논의 무덤이라고 믿었으나 ,
아가멤논보다 150년 정도 앞서 살았던 선조의 무덤이라고 밝혀졌다.
전사들의 집, 왕궁과 신전터, 장인들의 구역등이 여러 구역이 있으나 전문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복원도를 통해서만 옛 모습을 알수 있을 뿐이지만 BC 1300년대에
30,00제곱미터 터전을 기능별로 잘  구획하여  성곽 도시를 건설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1, 사자문 :


미케네 성채의 출입문으로서 사자문이 있다. 큰 돌을 다듬어 좌우에 세우고 그 위에 거석을
들어 올려 상인방(上引枋)을 앉혀 성문을 만들었다.  마주 보고 있는
두 마리의 사자를  돋을새김 한 삼각형 모양의 석회암 박공을 상인방 위에 얹어 성문을
마무리하였다.
사자는 용맹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방어를 위한 주술적 처방인데 성문에 맹수를
새기는 것은 오리엔트적 전통이라고 한다. 이 무거운 큰 돌을 어떻게 들어 올려
상인방을 앉혔을까? 그래서 고대인들은 키클롭스(Cyclopes)라는 외눈박이 거인이
거석을 들어 올려 성채를 쌓았다는 신화를 만들었지 않았을까?


2. 아트레우스 보물 창고

 
사자문에서 약 500미터 거리에 있다. 슐레이만은 이곳을 아트레우스의 보물창고라고
믿었으나 후에 무덤이라고 밝혀졌다. BC1350-1250 사이에 건립된 사실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도 아트레우스가 아닌 그보다 100년 전 정도의 선조 무덤이라고 본다.
무덤은 주실이 둥근 천장 형태의 THOLOS 형태다. 암벽을 둥글게 파고들어 가는
기법에서, 돌을 쌓아서 둥근 천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술 발전을 이루었다.
다만 천장이 아직 완전한 반구에 이르지 못하고 꼭대기가 뾰족한 역 깔때기 모양이다.
벽돌을 쌓아 올려 완전한 반구를 만드는 것은 로마의 판테온에 가서 완성이 된다(임석재)

 

3. 미케네 고고학 박물관.

미케네 관련한 토기 및 청동기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BC1500년대의 토기가
우리 백자 달항아리 정도의 형태를 갖춘 것도 있고 문양이 아름답다.
식량 저장용인듯한 밑이 뾰족한 큰 단지(PITHOS)는 높이가 180CM은 되어 보이는데
기원전 1100년대에 이 정도 토기를 구워내는 기술이 발달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BC 500년-AD 2세기에 만든 다양한 은화와 동전이 전시 되어 있었는데 2500년 전에
이미 동전이 유통되었고 화폐 주조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이 대단했다.
 Grave Circle A에서 출토된 소위 아가멤논의 가면이라고 잘못 알려진 황금가면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조품이라는 설명문은 없다. 진품은 아테네고고학 박물관에 있다고 하는데
혼란스럽다.

(위) 사자문

(위) Grave Circle A.황금 가면이 출토된 왕족들의 6개의 무덤군. BC16세기 조성

(위)왕궁의 입구의 문(Propylon)

(위) 왕궁터

 

(위)아트레우스 보물창고.BC1350-1250

 (위)아트레우스 보물창고(무덤)천장.벽돌을 쌓아올려 역 깔때기 모양의 천장을 만들었다.

(위)Snake figure.BC1250-1180

(위)사람모양 Figure BC150-1180

(위)배모양 문양이 있는 도기 BC1500-1400

(위)두개의 손잡이가 있는 청동 접시.BC1600-1500

(위)소위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 .Grave Circle A 출토품

(위)액체나 곡식을 담는 항아리인 거대한  Pithos.BC1100-1050

(위)은화.BC480-450

(위)삼발이가 달린 청동 솥.BC1180-1050
 
 [ACROCORINTH]


 미케네 유적지 관광을 마치니 12시경이었다. 미케네 유적지에서 ACROCORINTH까지는
약 40KM, 차로 40분 거리다. 우리는 ATREUS 보물창고를 나와 아크로코린트를 향해가는
도중에 어느 올리브 과수원에 들려 나무 밑 그늘에서 컵라면과 계란, 빵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시간이 없고 마땅한 식당을 찾기가 어려울 때 이렇게 야외에서  점심을 먹는 것도
즐거움이며 경비를 절약하는 효과도 있다. 나무 밑에서 식사를 하니 모네의 풀밭 위의 식사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떠 오르며 행복했다.
고대 코린트에서 보면 시지포스 산 위에 있는 아크로코린트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데 거리가 
3KM에 불과하다.
아크로코린트는 높이 575M의 시지포스 산위에 있는데 성곽입구까지는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다.
이곳의 성곽은 카에사르 시대 때부터 존재했다고 하나 현재의 성채는 중세의 건축물이다.
비잔틴 제국, 프랑크 족, 다시 비잔틴 제국, 베네치아, 오스만 투르크까지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면서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재해 있다. 안내판을 보면 17세기에는
해적들을 피해 피난처로서 성곽을 사용했으며, 당시 코린트의 인구는 성채와 CITY를 합쳐
15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아프로디테 신전 잔해와 교회, 오스만투르크 지배하의
이슬람 모스크 유적이 남아 있다. 우리는 성곽 입구에 오후 2시경 도착했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성문에서 출발해서 아프로디테 신전을 거쳐 해발 535m
정상에 있는 Southwestern Tower(일명 Frankish tower)까지 한 시간을 등산했다.
Frankish tower 위에 서서 아크로코린트 성벽과 바다를 접한 코린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니
산행에 지친 피로가 저절로 풀리는 듯했다.

 

 


 


 [에피다우로스 극장, Theatre of Epidauros ]

 

(아스클레피오스 성역, Santuary of Asklepios)

에피다우로스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종합치료센터가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이다.
아폴론의 아들이자 의술의 神인 아스클레피오스는 고대 그리스의 유능한
의사의 상징이었다. 에피다우로스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오스가 이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그를 위한 성역 아스클레피온을 건설했다.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에 기거하며, 신전에 기도하고 처방을 받아 약물치료를
받음을 물론이고 운동과 목욕 산책등을 통한 자연요법을 통해 질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지니고 다니던 뱀이 감긴 지팡이는 오늘날 WHO의 앰블럼이고
의술의 상징이 되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와 뱀에 얽힌 그리스 신화가 유명한데
허물을 벗는 뱀이 생명의 재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명을 치유하여 소생시키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에 얽힌 신화로 나타난 것이리라.
아스클레피온 성역은  거의 폐허가 되어 어디가 어딘지 알아보기 힘들다.
우리들은 원형극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목욕탕, 주거 시설, 치료동,
신전터등 성역은 주마간산격으로 훓어 보았다
 
 

(에피다우로스 원형극장. The Theatre of Epidauros)

우리가 에피다우로스에 간 것은 아스클레피온 성역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역의 일부인 원형극장을 보러 간 것이다.
기원전 340년 경에 완공된 이 극장은 비탈진 언덕에 건설한 전형적인
고대 그리스 극장이다. 14,000석을 수용할수 있는
극장의 위에 서서 내려다 보면 
원형의 무대가 아래로 까마득히 보인다. 객석은 그리스어로 THEATRON
이라고 하는데 보는 곳이라는 의미이고 영어의 THEATRE의 어원이 되었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무대와 객석사이의 원형공간은 춤추는 곳이라는 뜻의
오케스트라(ORCHESTRA)라고 했는데, 오늘날의 오케스트라의 어원이다.
음향효과가 극대화 되도록 설계되었다고 해서 테스트를 해 보았다.
객석 상단에 서서 까마득히 아래에 있는 무대에 선 아내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시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서로 알아 들을수 있었다. 무대에 서서
음향 테스트를 할겸 노래를 딱 한 소절만 불러 보고 싶었지만, 당신은 음치이니 민폐 끼치지 말라는 아내의
만류로 그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