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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그리스 여행(3.26일 미스트라스 ,스파르타)

낙산유정 2024. 3. 28. 12:55

여정
1.미스트라스(1020-1320)
성채,미트로 폴리스 교회,
성소피아 교회
페리블레프토스 수도원
2. 스파르타(1500-1600)
레오디나스 왕 무덤
스파르타 유적지
3. 스파르타 /올림피아 이동
올림피아 1박
   

[미스트라스의 역사]


성지를 수복하겠다는 십자군은  원 취지와는 달리 횟수를 거듭할수록 타락하게 된다.제 4차 십자군은 성지회복은 커녕  같은 기독교 문명권의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라틴제국(1204-1261)을 건설했다.십자군 기사들은 제국을 분할해서 봉건 통치했다.라틴제국의 주요 세력인  프랑크인들은 그리스 땅을 테살로니키,아테네,모레아 공국등으로 분할하였는데 펠레폰네소스 반도는 모레아 공국의 영역이 되었다.1249년 스파르타가 내려다 보이는 620m 높이의 산위에 성채를 세우고 모레아를 다스리는 도읍지를 건설한것이 미스트라스다.1259년 미스트라스는 다시 비잔틴 제국으로 넘어 갔다가 1460년  오스만 투르크의 메흐메드 2세에게 점령당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이후 일시적으로 베네치아의 지배(1669-1715년)를 받았으나 다시 오스만투르크로  넘어가는등 미스트라스는 지배자가 여러번 바뀌면서
다양한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다.
미스트라스는 비잔틴 제국의 제 2수도로서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 있고  황태자는 이곳에 상주하면서 그리스를 다스리는 총독의 역할을 수행했다.비잔틴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웠던 미스트라스는
198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미스트라스 관광]

620m 산위에 건축된 미스트라스 성채는 다행히 입구까지 차로 올라 갈수 있다.
성채관광후 내려오면서 아랫마을 윗마을을 둘러보아야 하는데 차량회수가 고민이었다 매표원과 상의 해보니 성채 관광후 밖으로 나왔다가 차로 아랫마을로 이동후 재입장 가능하다고 설명을 듣고 안심하고 관광을 시작하였다.

(위)미스트라스 성채.입구까지 차로 갈수 있지만 입구에서 요새까지는 꽤 가파란 길을 올라가야 한다.

(위) 성 소피아 교회

(위)Pantanassa 수도원

(위)St.Theodoroi 교회

(위)메트로폴리스 교회

(위)복원중인 왕궁
 

[스파르타.]


미스트라스에서 스파르타는 5km 정도 떨어졌다. 우리는 스파르타로 가는 도중에 계곡가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고 한참이나 휴식을 취했다.
스파르타 유적지 입구에 도착하니 영화 300으로 잘 알려진 레오디나스 왕의 무덤이 있었다
용맹한 스파르타인의 표상같은 인물의 무덤이지만 제대로 된 안내문 조차 없고, 아이들이
무덤 둘레에 친 철책을 넘나들며 놀고 있었다.무신경 한 것일까? 부실한 관리가 안타깝다.
스파르타 유적지는 폐허에 남은 돌 무더기만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데 이 마저 대부분 로마시대의
유물들이다.스파르타인들이 검박해서 그런지, 멸망하면서 철저히 파괴되서 그런지 영광의
제국은 흔적조차 없고  올리브 고목들과 무성한 잡초들이 폐허의 쓸쓸함을 더 해줄뿐이었다.
유적지 부근에 칼과 방패로 무장한 레오니다스 왕의 동상이 서 있어 극동에서 온 나그네들에게
스파르타의 영광과 용맹함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스파르타 고고학 박물관은 이미 문을 닫아 가 보지 못했다. 11월-3월의 동절기에는 대부분의
박물관이 15시에 문을 닫는다. 

(위) 레오니다스 왕의 무덤

(위) Roman Stoa(AD125-150)

(위) Agora

(위) ST. Nikon 교회(Basilica) AD 6C-7C

(위) The round building(BC7C-6C)

(위) 레오니다스 왕 동상. 1968년에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