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일 여정
오전 : 델포이(현대어 델피)
오후 : 테르모필레, 메테오라로 이동
[대지의 자궁, 델포이]
(델포이의 신탁)
아라호바에서 델포이는 11km로서 지척에 있다. 대지의 자궁이라고도 하고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델포이는 해발 2457m의
파르노소스 산 남쪽 절벽에 위치해 있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는 자신이
지배하던 세상의 중심을 찾기 위해 독수리 두 마리를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날렸는데 그 두마리가 만난곳이 파르노소스산 중턱이었다고 한다.
제우스는 두마리의 독수리가 만난 하늘에서
옴팔로스(Omphalos), 즉 세계의 배꼽이란 원뿔형 돌을 던져 놓았다고 하며 이 돌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중요한 종교적 상징물이었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옴팔로스는 델피 박물관에 있고, 델피 성소에는
복사품이 있다.
제우스는 사랑하는 아들 아폴론을 델피에 살게 했고 , 아폴론은 예언과
신탁을 통해 인간에게 미래의 일과 제우스의 뜻을 전달해 주었다.
그리스 뿐 아니라, 소 아시아, 페르시아에서도 신탁을 구하기 위해
재물을 싸들고 찾아오니 , 델포이는 신탁으로 인해 번성하는 도시가
되었다. 신탁이라는 것이 애매모호한 수수께끼 같은 말로 되어 있어서
해석하는 사람의 편의에 의해 뜻이 달라졌으며, 잘못 해석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 신탁이 얼마나 애매모호 했는지 델포이의 형용사인 영어 단어
Delphic은 두가지의 뜻으로 해석되는 또는 애매모호하다는 뜻이다.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은 , 제국하나가 쓰러진다는
신탁을 받고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벌였으나, 정작 망한 것은 자신의 제국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다는 신탁을 받고
이를 피하기 위해 한밤중에 코린트에서 나와 멀리 길을 떠나지만 이 비극적인 신탁은
결국 실현이 된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앞두고 내려진 유명한 신탁은, "세상의 끝까지 도망쳐라.
오직 나무로 만든 성에만 의지하라"라는 것 이었다. 아테네의 해군주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신탁을 근거로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어
삼단노선을 200척이나 새로 건조하는등 해군력을 강화하여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에
승리하게 된다. 테미스토클래스는 해군력 강화를 반대하던 세력들을 설득하기 위해
신탁을 이용하거나 조작했을 것이다.요즘의 여론조작과 같은 것이다.신화를 떠나 현실 세계에서 고대인들은
사사로운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근거로 이용하기 위해
신탁을 구했는데, 현명한 이는 자기에게 유리하게 신탁을 이용했다고 볼수 있다.
기독교 신앙이 퍼짐에 따라 그리스 전통 신앙및 델포이의 신전은 점차 힘을 잃어갔는데
AD393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한뒤에 델포이의 신전은 폐쇄되었다.
(델포이 성역)
28일 1010경 델포이 성역에 도착하니 벌써 도로 양 옆은 차들로 들어차있어 주차하고 입구까지 가는데 20분은 걸린것 같았다.입구에서 로만 아고라를 지나 아폴론 신전까지 이어지는 신성한 길 을 따라 아테네 등 각 폴리스들은 보물창고나 기념비를 세우고 봉헌물들을 바쳤다.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거나 감사의 표시 신탁을 구하는 용도로 사용됐지만 세를 과시하는 용도로도 쓰였다고 한다.
델포이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아폴론 신전에 이르러 신탁을 구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번영했던 델포이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보고 원형극장에 들렸다가 델피 고고학 박물관으로 향했다.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테나 프로나이아를 가보지 못했다는 점이다.프로나이아는 신전 앞이라는 뜻으로 델포이의 주신인 아폴론 신전에 가기전 들리는 아테나 성소라고 한다.아폴론 신전보다 더 볼만한 이곳을 갈 생각이 있었지만 여행 계획서에 적어 놓질않아 당일 깜박했다.
다 준비가 부족했던 탓이다.
(위)Roman Agora.로마시대 유적.신전에 바칠 봉헌물을 파는 스토아가 있던 곳이다.아고라는 시민들이 정치 과학 예술등 제반 사항을 논의하고 토론하던 곳이기도 하다
(위)아르고스 왕의 Exedra.왕이나 고위 관료가 델포이를 방문했을때 머물수 있는 반원형의 휴식공간(Exedra)
(위)시프노스 Siphnos의 보물창고 터
(위)시케이온Sicyone 보물창고 터
(위)옴파로스Omphalos.모조품이며 로마시대에 만든 것은 델피 박물관에 있다.
(위) 아테네의 보물창고.1906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위)아폴론 신전의 축대.신전은 무너져 내렸지만 축대는 남아 있다.
(위)시빌의 바위.아폴론 신앙이 들어 오기전 왕뱀 피톤이 신탁을 내렸는데 이 바위 위에서 여사제 시빌이 신탁을 전해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위)세마리의 뱀이 똬리를 틀어 올라가는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맨 꼭대기에는 세개의 뱀머리가 황금으로 된 세발솥을 받치고 있었다.BC480년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페르시아 군에게서 노획한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한다.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로 탈취해 간 연유로 지금 이스탄불 히포드롬 광장에 진품이 있다.델포이에 있는것은 모조품이다.
(위)Pillar of Prusias II.원래는 위에 그의 기마상이 있었다고 한다
(위)아폴론 신전.BC 7C 6C에 세워졌던 신전은 화재와 지진으로 각각 소멸되었고 BC4c에 다시 세워졌는데 AD390년에 파괴되었다.지금 보는 신전 유적은 세번째 지어진 신전이 폐허가 된 것이다.신전 입구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ad 110-180.파우니시아스가 쓴 고대 그리스 여행기에 전한다)
(위)원형극장.BC4C에 지어진 것으로 지금도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델피 고고학 박물관]
델포이 성소와 고고학 박물관은 한장의 티켓으로 두곳 다 볼수있다.델피 고고학 박물관은 모두 14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주로 델피 유적지에서 나온 출토품을 위주로 전시하고 있다.전차를 모는 사람,댄서의 기둥,낙소스의 스핑크스등 주요 전시품들을 둘러 보았는데 경이롭다는 말 이외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위)낙소스의 스핑크스.BC560.낙소스인들이 아폴론 신전에 바친 조각상
(위)안티누스 Antinoos 상.
안티누스는 빼어난 미모로 로마 황제 하드리안(Ad117-138)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위)Dancer들의 기둥.아테네의 왕 Cecrops의 세딸을 묘사했다고 함.높이13m의 거상이다.BC360
(위)전차를 모는 사람.BC5세기.전차를 모는 마부의 옷자락 얼굴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현대 조각이라고 해도 뛰어난 작품인데 2500년전에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니 경이롭다
[테르모필라이.Thermopylae]
2차 페르시아 전쟁의 격전지이자 영화300의 공간적 배경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라이를 거쳐 메테오라로 이동하였다.델피에서 메테오라를 가는 경로상에 있기 때문에 이 유명한 격전지를 찾아보는 것은 당연했다.BC480년 8월에 벌어진 그리스 연합군과 크레르크세스 휘하 페르시아 대군과의 격전을 상고해 보았다.
당시 레오니다스 왕의 스타르타 결사대 300을 필두로한 그리스 군은 총5200명(7400이나 11,200명으로도 추정)정도로 추정한다.수천명의 병력밖에 동원 못한 것은 펠레폰네소스의 다른 국가들은 적군의 규모에 겁먹어 병력동원에 소극적이었다.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이러한 소극적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선발대를 이끌고 테르모필라이로 향했을 것이라 추정한다.헤로도토스는
침공군 페르시아군 병력은 기병 10만 포함 180만이라고 기록했으나 실제 8만-20만으로 추정한다.
테르모필라이는 협곡끝의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하는 전투이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으로 방어가 가능한 지형이었다.
치열한 이틀간의 전투가 끝나고 사흘째에 그리스인 한명(에피알테스.영화에서는 꼽추로 나옴)이 배후로 통하는 길을 알려줘서 그리스 연합군은 거의 전원 전사했다.
테르모필라이에 도착해서 전투가 벌어졌을 만한 협곡을 찾아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되었다.다만 스타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의 동상과 300용사의 추모비만이
2500년전에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 현장을 지키고 있을뿐이었다.
당시 '스파르타가 망하든지 그들의 왕이 쓰러지든지 둘중 하나'라는 신탁이 내려졌다고 하는데 이는 후대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 추모비에는 시모니데스의 시,"지나가는 길손이여,스파르타 사람들에게 전해다오.그대들의 명에 따라 우리 여기 잠들었노라고."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구글 번역기로 이 추모 싯귀를 확인해 보았으나 햇빛이 강해 카메라로 비문이 인식이 되지 않아 번역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주로 레오니다스 왕의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메테오라로 차를 몰았다.
(위)레오니다스 왕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