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 어느덧 그리스 여행 12일째다.
오늘은 테살로니키를 떠나 테베, 마라톤을 거쳐 아테네까지 가는 550km의
긴 여정이다.
테살로니키에서 테베까지는 421km로서 우리 경부고속도로 길이와 맞먹는다.
입구-출구 전체 요금을 한 번에 징수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그리스 고속도로는
구간마다 요금을 징수하는 아주 불편하고도 후진적인 요금 징수 체계이다.
아마도 민자를 유치해 도로를 건설하고 각기 다른 민자회사가 자기네 건설구간에
대해 요금을 징수하는 SYSTEM이라고 짐작을 해 보았다.
이번 여행 내내 총무를 맡아 수고해 주신 이 교수님에 따르면 테살로니키에서
아테네까지 총 12번 TOLL FEE를 납부했다고 했다.마라톤은 마라톤 경주의 기원과
관련한 역사성 때문에 계획에 있었지만 테베는 안 교수가 가 보자고 제안을 했고
마라톤으로 가는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가게 되었다.
[슬픈 유적지 테베]
신화에서 테베(라틴어 발음 테바이)는 비극의 땅이다.
테베의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데 왕비 사이에 태어난 오이디푸스에게 저주 어린
신탁이 내려진다.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짐에 따라
라이오스 왕은 양치기를 시켜 오이디푸스를 들판에 갖다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코린토스왕의 아들이 된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알게 되고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에서 도망친다.(코린토스 왕 夫妻가 자신의 친부모인줄 알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는 저주를 피하기 위해).
하지만 우연한 싸움 끝에 테베왕 라이오스를 죽이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대가로 라이오스의 왕비 이오카스데와 결혼하고 테베의 왕이 된다.
오이디푸스는 물론 자신이 죽인 사람이 친부이고 아내가 된 사람이 어머니인 줄은
까맣게 모른 채 운명은 흘러간다. 테베의 왕이 되어 선정을 베풀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친부를 죽이고 친모와 결혼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스스로
눈을 뽑아 실명하고 방황의 길을 떠난다.
오이디푸스 이후에도 비극은 계속된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은 왕위를 두고
싸우다가 둘 다 죽고 딸들 역시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지도자를 잃은 테베는 약화되어 트로이 전쟁 때는 병력을 파견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현실에서의 테베는 아테네 스파르타에 이어 제3의 세력을 형성할 정도로 강력한
POLIS였다. 페르시아 전쟁 시 페르시아의 편을 들었다가 전후 아테네.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참패하고 보이오티아 지방의 POLIS들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한다.
펠레폰네소스 전쟁 이후 다시 강력해진 테베는 잠시나마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할
정도로 부상하는 등 부침을 거듭하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 초기에 마케도니아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완전히 몰락했다. 신화뿐 아니라 역사에서도 테베의
종말은 비극적이었다.
테살로니카에서 약 5시간 차를 몰아 테베에 도착해 보니 박물관을 문을 닫았고
소나무 숲 속에 주춧돌만 몇 개 나뒹구는 아폴론 신전만 볼 수 있을 뿐
고대의 유적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따라서 테베를 찾는 관광객도 없고 그저
낙후된 소도시일 뿐이었다.
보통 폐허에는 쓸쓸함이 감돌지만 테베의 아폴론 신전에서는 나는 왠지 모르게 잠시
슬픔에 젖었다. 인간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떠 올라서일까? 아무것도 없어 슬픈 도시 테베를 떠나 마라톤으로 차를 몰았다.
(위)테베의 아폴론 신전 터.
[마라톤]
우리는 4.2일 오후 테베를 떠나 마라톤에 당일 오후 5시경에 도착했다.
Marathon Run Museum은 이미 Close 되어 박물관 앞에서 사진만 찍었다.
마라톤 전투의 현장이 궁금하여 현지인들에게 물어 찾아보았으나 길을 잘못 들었는지
어디가 어딘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마라톤 전투에서 전사한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
192명의 합장묘 팀보스도, 길가에 있다는 마라톤의 병사 Philoppides상도 시간이 늦어
찾아보지 못했다.팀보스에서 바닷가 쪽으로 펼쳐진 들판이 전투 현장이었다는데
자세히 답사 하지를 못해 매우 아쉬웠다.다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마라톤 코스가 푸른색
line으로 길에 그어져 있었는데 그 코스를 차로나마 약 10km 달려 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아테네에 도착하여 4월 2일-4월 6일 4박 5일 묵을 숙소인 한 아파트에 여장을 풀었다.
아크로폴리스 VIEW라 해서 잡았는데 과연 파르테논 신전이 완벽히 보이는 멋진
숙소였다
[마라톤 경기의 유래]
마라톤 경기의 유래는 너무나 유명하다.
마라톤 전투(BC490년)당시 아테네의 주력군은 마라톤에 있었고 아테네에는
약간의 수비병만 있었다. 아테네에 페르시아 군이 출현하면 마라톤에서 아군이
패한 줄 알고 항복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마라톤의 승전보를 신속히 아테네에
전달해야 했다.
아테네까지 약 37KM를 달려간 에우클레스라는 병사가 승리 승리(NIKE NIKE)라고
외친 후 쓰러져 죽었다는 것이 전설이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1896년
올림픽부터 마라톤 경기를 넣었고, 거리는 들쑥날쑥 하다가 1908년 런던 올림픽부터
42.195KM로 고정되었다고 한다.
아테네에 승전보를 전한 병사가 PHEDIPPIDES라는 설도 있으나, 이 병사는 아테네가
아니라 스파르타에 원병을 청하기 위해 이틀간 200KM를 뛰어갔다는 설도 있다.
에우클래스든 페이디피데스건 아테네로 뛰어간 병사의 전설은 쿠베르텡 남작의
친구인 미셜 브헤알에 의해 감동적인 스토리로 각색되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이에 대한 기록이 없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여하튼 마라톤의 승리는 신화가 되었다. 전사한 자나 생존한 자를 막론하고 모든 마라톤
참전용사(마라토노카마이)는 군인의 표상이 되었으며 비극시인 아이스킬로스는
자찬 비문을 아래와 같이 적었고, 마라톤 참전을 자랑스러워했다.
(아이스킬로스의 비문)
아테네인,에우폴리온의 아들, 아이스킬로스
게라의 흙이 되어 이 무덤에 잠잔다.
마라톤의 숲은 그의 무훈을 말해 줄 것이며
머리카락 긴 메디아 인(페르시아인)도 그를 기억할 것이다
(위) Marathon Run Museum
(위)Classic Marathon Course
(위) 아터네 숙소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