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일 일정 :
아크로 폴리스.디오니소스 극장,아레오파고스 언덕,소크라테스 감옥,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하드리아누스 아치
[아크로폴리스]
3.23일부터 4.3일까지 우리가 거쳐온 곳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아크로폴리스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우리 딴에는 인파가 붐비기 전에 일찍 간다고
간 것이 9시였다. 붐빌것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아크로폴리스는 입구에서 부터 인산인해였다. 안 교수는 더 붐비기 전에
파르테논 신전부터 보고 내려오면서 다른 유적지들을 보자고 해서 서둘러
올라갔지만 이미 파르테논 신전에는 인파가 가득했다.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하여 Acropolis와 Slope의 유적들에 대해 나름대로 사전에
공부하고 정리해 갔지만 인파들 틈바구니에서 사진을 찍기에 바빠서 찬찬히
참고하여 현장 학습을 할 틈이 없었다. 파르테논 신전을 보려면 OPEN시간인
8시 이전에 가서 줄서 있다가 입장하는 것이 좋다.
정리해 간 memo는 버리기 아까워 여기에 첨부해 둔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Odeon of Herodes Atticus)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하여, 남서쪽 입구를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는 로마시대의 건물이다. AD 161년에 로마의 대 부호 헤로데스 아타쿠스가
죽은 아내를 기리며 건립해 아테네 시에 기증한 음악당이다. 로마식 아치가 많이
보여 콜로세움과 같은 느낌이 난다. 아직도 매해 여름 아테네 축제 때 여러 공연이
이 극장에서 열린다.
(블레의 문.Beule Gate)
아크로폴리스를 둘러싼 성의 성문이다. 프로필라이아 아래쪽에 있다.
(프로필라이아)
아크로폴리스의 정문이다. 파르테논 신전이 완공된 이후 BC437년부터 짓기
시작했지만 ,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면서 공사가 중단되어 미완의
상태로 남은 건물이다.
(위) 파르테논 신전에서 본 프로필라이아.
(위) 프로필라이아 전면
(아테나 니케신전)
프로필라이아의 오른쪽 뒤편에 있는 작은 신전이다.델로스 동맹의 승리를 기원하는
목적에서 지어졌다.
니케는 승리의 여신이다. 따라서 아테나 니케 신전은 승리하는 아테나를 위한 곳이다.
니케는 이 신전에서는 날개가 없는데 승리의 여신이 아테네를 떠나지 못하도록
날개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김영숙 신화로 읽고 역사로 쓰는 그리스, 71p)
(위) 아테나 니케 신전
(아그리파 기념비)
프로필라이의 왼쪽에 있는 건물이 아그리파 기념비다. 최초 페르가몬왕
에우메네스 2세가 판 아테나 경기에서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받침대 위에
청동 마차를 올려놓았다고 하는데, 후에 로마 장군 마르크스 아그리파의
청동 기마상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받침대만 있다.
(위) 아그리파 기념비. 프로필라이아 왼쪽 굴뚝같이 생긴 것이 아그리파 기념비다
(에렉테이온신전. Erechtheion)
6명의 여인이 벌을 서듯 지붕을 떠 받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테네/페르시아 전쟁 당시 페르시아에 부역한 그리스의 POLIS들 중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카레아이(Carae)가 대표적이다. 전후 카레아이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로 삼았다.
BC4세기 초 에렉테이온 신전을 지을 때 카레아이의 여인들이 지붕을 떠 받치는
형태로 짓고 이 기둥들을 카리아티드라고 했다. 이후 카리아티드는 건축의 한
양식이 되었다.
카리아티드는 총 6개인데 5개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 1개는 영국 박물관에 있다.
신전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다.
한 신전에 한 명의 신을 모시는 원칙과는 달리 에릭테이온 신전은 하나의 성소에
3명의 신을 모시는 성소가 각기 다른 외양으로 건축되었다.
아테나의 성소, 포세이돈의 성소, 에렉테우스 왕을 위한 성소로 구분되어 있다.
아테네의 수호신은 아테나지만 지중해를 오가며 무역을 하던 아테네는 포세이돈의
가호도 필요해서 신전에 포세이돈을 합사 했다고 볼 수 있다
신전 앞에 올리브 나무가 있는데 아테나가 선물로 준 올리브나무의 자손 나무라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전설이다.
(위) 에렉테이온 신전
(파르테논 신전)
프로필라이를 지나 아크폴리스에 들어서면 파르테논 신전에 눈앞에 펼쳐진다.
이번 3주간 그리스 여행의 하이라이트다.파르테논 신전을 보기 위해 그리스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뼈대만 남았으나 비례가 잘 잡혀 장중하면서도 빼어나고 아름답다.
2500년 전의 건물이 이토록 완벽한 균형과 비례를 갖추고 있다니 놀랍다.
파르테논 신전은 BC447-432년 15년간 걸린 건축물이다. 이 시기는 델로스 동맹의
전성기로서 아테네의 영광과 번영을 나타내기 위해서 지어졌다. 파르테논 신전은
동맹 전체의 보물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제국화된 아테네를 상징하는
대 건축물이다. 델로스 동맹의 자금을 파르테논 신전 건축에 사용할 정도로
아테네는 강성했다.
이처럼 제국화된 아테네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신전이 17, 19세기 제국들의 탐욕에
희생양이 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1687년 오스만 투르크 /베네치아간의 모레아 전쟁때 신전이 파괴된 것도 강대국간의
전쟁이 낳은 인류 문화사의 비극이다
1801년부터 약 10년간 오스만 투르크 제국령 그리스에 영국대사로 있던 엘긴 백작에
의해 무려 253점이나 되는 프리즈, 메토프의 부조와 페디먼트의 조각상, 기둥의
주두들이 떼어져 영국으로 반출된 것도 강대국들에 의해 파르테논 신전이 찢기고
파괴된 비극이다.
소위 엘긴의 마블에 대한 그리스의 반환 요청은 아직은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 Melina Mercouri를 비롯해서 1983년부터 그리스는 지속적으로
반환을 요청하고 있으나, 합법적으로 반출했다는 핑계로 영국은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19세기 영국 프랑스 독일등 힘이 있는 제국들이 강탈해 간 수많은 문화재는 합법의
외피를 두르고 있기 때문에 반환 요구는 앞으로도 수용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결국 지킬 힘이 없으면 국가보물도 남의 것이 된다는 교훈을 여기 파르테논 신전에서
절실히 생각해 보았다.
착시 현상을 감안한 기법, 즉 기단(STYLOBATE)을 미세하게 불록하게 하는 RISE 기법,
안 쏠림 기법, 기둥 간격 조정 등은 현장에서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하기야 착시 현상을 감안하여 이 같은 기법을 사용했으니 내가 눈으로 확인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했던 일이다.
메토프와 페디먼트의 조각도 소수만이 본래의 위치에 있다고 하지만 가까이 볼 수가
없어 확인하기는 어렵다.
동쪽 페디먼트 조각중 유명한 누워있는 남자는 육안으로 선명히 보이나, 프리즈의
부조들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아크로폴리스 전체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파르테논 신전 주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아테나 여신이 살아 있으면, 인간들아 그만 좀 오라고 일갈했을 것 같다.
(위 사진들) 파르테논 신전.
(위) 동쪽 PEDIMENT 왼쪽 부분의 말머리와 누워있는 남자 조각.디오니소스 신이 떠오르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마차가 지평선 위로 뜨는 장면을 편안하게 보는 모습을 묘사했다고 한다. 복사품이다.원본은 영국 박물관에 있다
박물관에 있는 원본보다 제자리에 있는 모조품이 훨씬 가치가 있어 보인다.
뭐든지 제자리에 있어야 주변과 어울려 제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
(위) 동쪽 PEDIMENT의 오른쪽 부분. 달의 여신 셀레네가 타고 다닌 셀레네의 말이라는
말의 두상이 보인다.원본은 영국 박물관에 있다.
(위) 남쪽 부분의 메토프. Lapiths와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의 전투 장면을 새긴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SOLPE]
(디오니소스 극장. Theatre of Dionysos)
디오니소스는 어머니가 둘인자라는 뜻이다. 제우스의 아들인데 어머니 세멜레가 번개에 타 죽자
제우스가 허벅지에 넣어 키웠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겨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자랐으므로
어머니가 둘이라는 신화다. 술의 신, 축제의 신이고 머리에 포도장식이 있고 상징 동물은 표범이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BC6세기에 건립되었다가 소실이 되고 BC 346-342년에 수용인원 14000-1700명
정도로 재건 되었으나 지금은 폐허다 . 비극 경연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디오니소스 제전때 비극 3편 희극 1편이 공연되었다는데 3대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희극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이 처음 상영된, 서양 연극의 탄생지라는데 의의가 있다.
(위) 디오니소스 극장. 파르테논 신전 아래에 있다.
(에우메네스의 스토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과 디오니소스 극장을 잇는 페르가몬의 왕 에우메네스 2세의 이름을 딴
에우메네스 주랑이 있었다고 함. 기둥들이 줄지어 있는 복도를 주랑이라고 하고 주랑 한쪽은 벽을
만들고 한쪽은 틔어 있는 구조다. 주랑이 길 경우에는 작은방들이 들어섰고 이 작은 방들을 STOA라고
했다. 영어 STORE의 어원이다.아테네 남자들은 뜨거운 햇빛을 피해 열주랑안의 그늘에 모여 대화와
토론을 즐김. 이런 토론 문화에서 탄생한 것이 STOA 학파이다(BC 3세기부터 로마 제정 말기까지
이어짐). 로마 오현제중 한사람이자 명상록의 저자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등이
STOA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위) STOA OF EUMENES및 주랑의 기둥)
(위) 디오니소스 극장옆에 있는 아스클래피오스의 성역 .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사로서 의술의 신인 아폴론의 아들로
사후에 신격화 됨. 뱀이 감고 있는 지팡이가 상징물인데, 이것이 WHO의 상징물이기도 하다.원래 히포클라테스 선서는
나는 의술의 신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히게이아 및 파나케이아에게 맹세하며...로 시작된다.
아스클래피오스의 성역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터만 남아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사이에 위치한 언덕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의 아레오파고스라 한다. 아레스는 자기 딸 딸 알키페를 포세이돈의 아들이
범하려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그를 살해한다. 포세이돈이 신들의 법정에 아레스를 고발하여 아레스가
재판을 받은 곳이 아레오파고스다. 이 이름을 딴 귀족들의 모임 아레오파고스는 재판을 하는 사법기관
이었고 지금 그리스 대법원의 이름도 아레오파고스다.
아레오파고스는 이러한 고대 사법기관으로서 보다는 사도 바오르의 선교의 현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이를 기리기 위해 사도행전 17장 22절-34절이 새겨져 있는 판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숭배하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 사람의 기술이나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을 가지고 만들어낸 우상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라고 설파한 바오르의
노고와 답답함을 생각해 보았다.
(위) 사도행전을 새겨 놓은 아레오파고스 언덕
(소크라테스의 감옥)
(위) 소크라테스의 감옥. 프닉스의 언덕 초입에 있다 . 소크라테스가 이곳에 갇혔다고 하는데 신빙성은 낮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굴한 유물을 위주로한 박물관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 메토프의 부조와 페디멘트의 조각들의 진품과 복원품들을 볼수 있다.
에릭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 진품을 볼수 있다
(위) 파르테논 신전 동쪽 페디먼트재 조각, K 슈베르체크 1904.
(위)두마리의 사자에게 먹히는 황소, Hekatompedos의 페디먼트 조각 BC570. 헤카톰페도스가 파르테논의
별칭이라고도 하고, 내실의 동쪽방이라고도 하는등 자료마다 달라 헛갈린다
Gutter and Geison. 페디먼트위의 물받이 시설물이다
(위)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 진품
(위)송아지를 잡아먹는 사자. 파르테논 신전의 동쪽 페디먼트
(위)PAPPOSILENOS AND DIONYSOS.BC2세기.
(위)송아지를 메고 있는 남자.BC570년 경.신전에 바칠 희생물인 송아지를 메고 가는 모습으로 추정.
(위) Nikai. 페디먼트 정점에 있는 테라코타 장식.AD1-3세기
전차를 끄는 네마리 말. BC570. Hekatompedos Metope
(위) 아크로폴리스 모형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아크로폴리스 동쪽 밑에 있다.평지에 우뚝 솟은 신전이라 시야가 탁 트이고 시원한 느낌이 난다.신중의 신 제우스 신전이라 다른 어떤 신전보다 크고 높다.기둥의 높이만 해도 17m로서 11m의 파르테논 보다 월등히 높다.남아 있는 기둥은 16개에 불과하지만 원래는 104개로서 파르테논의 46개보다 월등하게 많다.아버지 제우스를 모신 신전이니 파르테논 보다 규모가 큰것은 당연하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Order는 코린트식이다.
기원전 515년경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신전을 짓기 시작했으나 자금 부족등의 이유로 중단되었다가 BC174년 헬레니즘 시대에 시리아의 왕 안티오코스 4세에 의해 공사가 재개되었으나 기둥만 몇개 세워졌다.이후 AD132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때 완공되었다.차공후 무려 650년이 걸렸다.이런 사유로 기둥양식이 가장 후기인 코린트식이 된것이다.이번에 가 보니 수리중이라 철제 비계를 가득 두르고 있었다
(위)제우스 신전
[하드리아누스의 아치]
(위)하드리아누스 아치.
제우스 신전 바로 옆에 있다
제우스 신전의 완공을 명령한 하드리아누스 황적는 AD132년 자신의 아테네 방문을 기념해서 개선문을 세웠다.아치는 전형적인 로마양식인데 그위는 그리스 신전 모습이다.그리스 로마양식이 혼합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