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5년 실크로드 기행(명사산,월아천.8.25일 오후)

낙산유정 2025. 9. 13. 23:13

8.25일 0420pm, 드디어 돈황 명사산에 도착했다. 
명사산 월아천, 막고굴은 단연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월지와 동맹을 맺어 흉노를 협공하기 위해 장건이 서역으로 갔던 시절
한나라는 하서회랑등 서역에서 흉노와 무수한 전쟁을 벌였다. BC121-111년
한나라는 흉노를 몰아내고 무위 주천에 郡을 설치하고 이어서 장액 돈황에
2개 郡을  설치하여 하서사군을 설치를 완료했다.돈황 서북쪽에 양관,
서남쪽에 옥문관을 설치해 서역을 오가는 통상로를 관리했다.
이때부터 돈황은 실크로드의 교역 중심지로 , 서역에서 불교가 전해지는
중요 경로상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서 번창하게 되었다.
불교는 오아시스 국가인 구자국(쿠차), 우전국(호탄, 和田) 등을 거쳐
전한 말기 (AD 元年 전후)에 이미 중원으로 불교가 전파되었고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중원에 상당히 성행하게 되었다.
5호 16국 시대에 돈황 석굴, 병령사 석굴이 이미 건설되기 시작했고
盛唐 시기에는 석굴사원등 불교미술이 최 전성기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돈황은 실크로드 교역로상의 주요 거점인 오아시스 도시를
상징하는 명사산 월아천과  불교전파 경로상의 대표적 석굴인 막고굴이
지역의 상징이다.
돈황은 오늘날 이 두 가지 유산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바글바글하다
따라서 우리의 관광도  隊商의 낙타행렬이 사막을 건너는 체험을 하기 위해
낙타를 타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이후 사막의 절경 명사산  월아천을 관광하고
내일(8.26일) 막고굴을 답사할 예정이다.
 

[명사산에서 낙타 타기]

금년초 및 7월 말-8월 중순 내내 허리가 안 좋아서 고생을 했다. 아내는
내 허리를 걱정해서 낙타를 타지 말자고 했지만 이번 아니면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아내를 설득해서 타 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때
고향에서 가끔 소를 타 본 이후 처음으로 짐승을 타보는 것이었다.
명사산의 모래는 밀가루처럼 고와서 모래가 옷이나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두 주황색 덧신을 신었다.
관광객이 많을 때는 최대 2000마리의 낙타가 사람을 태우고 명사산
주변을 도는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탔을 때도 낙타 행렬이
셀 수도 없이 많아 적어도 700-800마리는 되어 보였다.
약 50분간 RIDING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반동이 적어 허리에
큰 무리는 없었다. 등산과 마찬가지로 낙타 시승도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에서 몸의 균형을 잃기가 쉬어 조심했다.
낙타는 매우 순한 동물이라 사람에게 순종하는데, 그래도 몰이꾼들이
때리는 등 심하게 다루는 경우가 있어 동물 애호가들이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隊商들의 동반자가 되어 비단, ROMAN GLASS, 장신구 등등
귀한 물건들을 싣고 오아시스 도시들을 오가던 낙타가 이제는 관광객들을
태우는 하찮은 일을 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명사산에 올라 월아천을 보다]

 

명사산은 돈황 남쪽 5km 지점에 있다.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산 아래 사막에
맺힌 눈물처럼 아름다운 오아시스 연못인 월아천이 있다.
그 너머 절벽에 막고굴이 있는데 월아천에서 직선거리로는 12-3km에 불과하나
차로 가면 28km 30분 정도 소요된다.
명사산이 아름다운 것은 메마른 모래 언덕에서 사파이어 같이 영롱한 작은 호수
월아천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명사산은 남북 20km 동서 40km 평균 해발 1600m인데, 돈황지역 자체가 
고원이라 실제 사구는 수십m에 지나지 않고 제일 높은 사구도 250m에 불과하다고 한다.
월아천에서 오르내리는 사구도 높이 60m 정도라고 한다. 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모래
언덕이라고 봐도 된다.
바람이 불고 건조한 날에는 모래가 날리고 서로 마찰되어 소리가 나는데 그래서
산이름이 우는 모래산이라는 뜻인 명사산(鳴沙山)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덧신을 신은 채로 명사산에 올랐다. 줄사다리에 계단을 달아 발이 모래에
빠지지 않게 하는 등산로인데 개미떼처럼 줄지어 오르는 사람들로 인해 
한없이 더디었다. 등로를 벗어나 오르는 사람들도 많고 아이들은 모래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눈썰매 같은 기구를 타고 내려오며 즐거워했다.
나도 등로를 벗어나 모래산을 올라보니 발이 푹푹 빠지고 한 걸음 오르면 반 걸음은
미끄러져 내려올 정도라 이내 포기하고 등로로 복귀했다.
월아천을 내려다보니, 모래바닷속의 새파란 연못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사파이어 같았다.
월아천을 사진에 담으려고 연신 뒤돌아 보며 사진을 찍었으나 개미떼처럼 바글거리는
사람들로 인해 좋은 사진을 얻기는 힘들었다.
정상에 올라 보니 반대쪽으로도 모래산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데 지프차로 모래산을
질주하는 관광 상품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월아천으로 내려오는 길은 비교적 쉬웠다. 발은 푹푹 빠지지만 푹신푹신해서 넘어져도
다칠 염려가 없으니 모두들 빠른 속도로 내려올 수 있었다.
 

[월아천(月牙泉)]

모래 언덕 밑에 생긴 초승달 모양의 작은 호수 월아천의 물빛은 주변의 모래 색과 대비되어
영롱하게 빛이 난다. 황량한 모래산과 작은 연못, 녹색의 숲, 이보다 더 기막힌
색상대비가 있을까?
과연 선녀가 흘린 눈물 방울이 연못이 되었다는 전설이 생겨날 만하다.
아득한 옛날 돈황이 갑자기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고 어두워지자  이를 슬퍼한 선녀가 흘린 눈물이
땅에 맺혀 연못이 되고 , 초승달을 연못에 던져 어둠을 몰아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작은 연못이 수천 년 동안 마르지 않고 물을 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월아천은 지하수가 솟아나는 샘물형 오아시스다.
사막 한가운데의 월아천의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돈황을 흐르는 당하(黨河)와 연결된 지하수 층에서 물이 스며들어 지하 수맥을
형성하는데 월아천은 이 지하수 흐름이 지표면으로 솟아나는 지점에 있어 지속적으로
물이 보충되기 때문이다
또한 월아천은 지대가 낮아 명사산 서북부 충적층에서 지하수가 스며들어오고
지반이 점토충적층이라 물이 밑으로 잘 빠지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명사산의 강한 암반형 산체가 방패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월아천이 모래에
매몰되지 않고 수천 년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유홍준 답사기).
그런데 최근 돈황지역에 농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물의 사용이 급격히
늘어 지하수위가 낮아져 월아천이 말라갈 위기에 봉착하여 인공적으로 월아천에
물을 보충하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월천각 月泉閣]

월하천 옆에 월천각이라는 5층 높이의 거대한 누각이 있다.
명사산 명불허전(鳴沙山鳴不虛傳)이라는 편액이 눈에 띈다.
鳴沙山名不虛傳이 아니라 이름 名자를 울鳴으로 바꾸니 명사산의 이름은 헛되이
전해지지 않는다에서 명사산의 울음은 헛되이 전해지지 않는다라고 바뀐다.
한자로만 가능한 재미있는 언어유희다
월천각은 1997년에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이다. 옛날에 있었던 건물을 고증해서
복원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문화재를 복원할 시는 반드시 고증에 근거해서 자재도
옛 자재인 목재와 석재로 복원해야지 콘크리트로 다시 짓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전에 가욕관을 보고 약 380km를 달려와서 명사산 월아천을 보았다.
아름답지만 긴 여정이었다.

(위) 명사산의 이모저모

(위) 월아천

 

(위) 월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