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오카성 성터에서 (24년 2.18일 오전)

낙산유정 2024. 2. 18. 20:20

주춧돌과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폐사지나 허물어진 성벽만 있고 폐허가 된  옛 성터를 둘러 보는 것은 생각할수 있는 여백이 많아 여운이 길게 남는다.2.18일 오전 우리 IMG 일행
10명은 일본통 漢山의 안내로 오이따현 다케타시에 있은 오카성터 (岡城跡)를
둘러 보았다.  PACKAGE TOUR로는 갈수 없고  한국인들은  규슈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만 들릴수 있는 곳 인데
10명이 단체로 자유 여행을 와서 이런 보석같은데를 둘러 보는 특권을 누리는 것은 오직 한산 선배님 덕이리라.
성의 건물들은 허물어 지고 없지만 천애 절벽위에 높이 쌓은 석성은 난공 불락의 위용을 자랑한다. 우리 일행들은
이山城은 내부에서 열어 주는 배신자가 없으면 함락시키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마디씩 하며  성벽의 높이와 견고함에 모두들 감탄했다.
과연 일본의 국보로 지정될만 하다. 이 일대를 다스린 영주는  석고 7만의 작은 번의  다이묘에 불과한데 이런 
난공불락의 성을 지었다는 것은 일본 전국시대가 얼마나 치열했을까?상상을 해보며 길을 걸었다.
大手門?이라는 성의 정문은 없어졌지만 문 양쪽의 압도적 성벽에 감탄하며 성내로 들어섰다. 성의 중심 건물이 있던 本丸跡(혼마루 site) 높은데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건물들이 사라져 성 아래 경치가 일망 무제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마치 내가 이 성의 영주가 된듯 우쭐해 지기도 했다. 먼산은 오사카 성의 다듬어진 인공미보다도 이 성터가 훨씬 매력적이고 독일의 고성들 보다도 볼만하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했다.나는 유럽 일본,중국의 고성을 많이 가본편인데 우리의 한양도성이나 남한,북한산성등 우리네 성들은 왜 그리 성벽이 낮고 허술할까 하는 의문을 늘 가지고 있다.혹자는 한양도성은 방어 기능에 치중한 성곽이 아니라 한양의 경계를 두른 울타리라고 설명하는데 논리가 참으로 옹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내문을 잠깐보니 16세기경 완성된 오카성은 대대로 中川 가문에서 다스렸는데 明治유신이후 판적봉환(版籍奉還)의 대 변혁을  피해 가지 못하고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이성을 모티브로 한 노래 皇城の月의 가사가  폐허가 된 옛 성의 정취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듯 하다.압도적인 성벽이 상징하는 옛 영화와 주춧돌등 기단만 남아 있는 폐허의 쓸쓸함이 공존하는 곳 오카성 유적지에서 느낀 감상은 황성의 달 노랫말 처럼 여운이 길게 갈것 같다.
2월20일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오카성을 둘러본 감상을 적어 보았다
[皇城 の月]
1절
봄날 高樓의 꽃의 연회,
도는 술잔에 그림자 비치고,
千年松 가지 사이로 비치는 그 옛날의 빛은 어디에.
3절 ( 종장)
성곽에 남은 것은 칡 넝쿨 뿐
소나무에게 노래하는 것은 바람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