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이 두번째 구마모토성 방문이다 .이 성은 일본의 유명한
古城이라서 주요 관광 명소이기도 하지만 임진왜란때 우리를 침략한 왜군의 용장
가등청정(加藤淸正,가토기요마사)이 쌓은 성이라서 우리에겐 원한어린 곳이기도
하다.
1877년 세이난 전쟁때 소실된 천수각은 오사카성처럼 1960년대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재건되어서 문화재적 가치는 크게 감소 되었지만 하늘 높이
치솟아 날아 갈듯한 외관은 위풍 당당해 보인다. 성벽과 해자는 원형이 잘 복원되고
보존되어 문화재적인 가치도 높아 보인다.
성 축조 전문가인 가등청정이 세운 성답게 성벽은 높고도 견고하여
난공불락의 위용을 자랑하고 물은 없지만 깊게 파인 해자는 적이 쉽게 건널수
없을듯 했다.
1층-5층을 걸어 올라가며 천수각을 관람했는데, 눈에 띄는것은 울산성 戰鬪圖
복사본이었다.
이 그림은 임진왜란때 왜군의 발진기지인 히젠 나고야성 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는것을 직접 보았고 KBS 역사SPECIAL의 울산성 전투 방영시에도 소개된바 있다.
우리 대중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울산성 전투는 정유 재란중 전쟁의
향방을 가름하는 중요한 대규모 전투 였다.
재침한 일본군은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을 대파하고 남원성과 전주성 전투에서
명군을 이기고 전라도를 일부 점령한 상태에서 충청도 직산에서 명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량해전에서 수군이 패배하자 보급로가 끊길 우려를 한 왜군은
더 이상 북진하지 못하고 남하하여 남해안과 울산, 서생포등에 왜성을 쌓고
장기 주둔하게 되고 전쟁은 교착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조명 연합군은 소서행장이 주둔하던 순천 왜성이나 울산의 가등청정을
공략하는 것을 검토 했는데, 왜군의 본거지인 부산포를 압박할수 있고, 임진왜란때
함경도에서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아 끌고 다닌 가등청정을 잡아 복수하고
군의 사기를 진작할수 았다는 판단에서 울산의 가등청정을 치기로 결정 했다.
조명 연합군 4-5만(조선군은 약 1만)은 16,000병력의 가등청정의 울산 왜성을
공격하여 대규모 공성전이 음력 1597년 12월23일부터 이듬해 1월4일까지
13일간 벌어졌다.
가등청정은 현재 학성공원이 있는 태화강변에 40일만에 급히 울산왜성을
축성했는데 군량이 부족했고 무엇 보다도 성안에는 우물이 없고, 성밖의 우물은
조명 연합군이 모조리 메워서 식수가 없어 물을 구하기 위해 결사대를 조직해서
밤에 성밖에 나갔으나 대부분 조명 연합군에 잡혀서 식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왜군은 전투의 주력인 조총병에게 하루 생쌀 한홉을 지급할 정도였고 가등청정등
지휘부 도 굶주릴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라 말 오줌까지 마시고 마침내 전투에서
중요한 전마를 잡아 피를 마실 정도였다고 한다.
가등청정이 항복하느니 할복할 결심을 할 정도로 전황은 왜군에겐
절망적이었는데 니베시마 나오시게를 필두로 13000명의 구원병이 도착하고,
남해안의 각 왜성에서 구원병을 급파함에 따라 조명 연합군은 포위를 풀게 되었다.
양측의 전사자만 12,000(왜군 6000, 조명 연합군 6000)에 이를 정도로 정유재란
최대의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승자와 패자는 없지만 왜군은 풍신수길에게 철군을 건의하게 될
정도로 전의를 상실하고, 철군이 받아 들여지지 않게 되자 전라 경상도의 동남 해안에
28개의 성을 축성하고 성안에 틀여 박혀 전쟁이 교착 상태에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전후 구마모토의 대명으로 봉해진 가등청정은 울산성 전투의 경험을 토대로 이 성을
축조 하였다고 한다. 울산성에서의 식수 문제를 교훈 삼아 성내에 120개의 우물을
팠다고 하며 다다미도 토란 줄기를 된장에 졸여 만들어서 유사시에 식량으로 사용할수
있게끔 대비했다고 한다.
승전이 아니라서 우리에게는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는 울산성 공방이
전쟁의 향방을 가른 주요 전투로 인식된다고 한다.
천수각에 전시된 울산성 전투도를 자세히 보니 압도적 다수의 조명 연합군에 포위되어
고립된 성안에서 말을 잡아먹는 장면등 왜군의 참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가등청정을 구원한 니베시마 나오시게가 화공을 시켜 당시의 전투 현황을
그린 그림인데 구마모토 성 천수각의 것은 원본을 촬영한 사진인듯 하다.
구마모토성은 일본인들에게는 사쓰마번의 사이고 다카모리의 반란군을 진압하는
세이난(서남) 전쟁 당시의 격전지로 유명하다. 당사 사이고의 사쓰마군은 구마모토성에서
농성한 정부군을 55일(?) 동안 포위했으나 끝내 진압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가등청정은 우리에겐 원수인데 천수각내에 전시된 갑옷입은 가등청정 상 옆에서 무담은
주먹을 쥐고 노려보며 민족 감정을 살짝 표출하였다.
[마지막날 저녁식사]
일본 문화청 등록유형문화재로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어떤 서점을 들렸으나 역사만
오래되었지 도서는 빈약해서 볼것이 없었다.
마지막날 저녁은 술이 무한 리필되는곳이었다. 오래전 한산과 공산이 동경에 근무시 CN KIM등과
술이 무한리필되는 어떤 주점에서 인당 정종 28 도꾸리를 마셨다는 무용담을 자랑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늙어 무한리필되는 술 소비가 더디다. 과거의 무용담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떠나면 돌아오고 싶고, 돌아오면 떠나고 싶은 것이 인생이라. 벌써 내년도 여행에 대해
열띤 논의를 했다. 잠정적으로 내년 여행은 대만으로 정하고 해외여행과 국내 여행을
각각 1회 하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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