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감염에 대한 염려로 3월부터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고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지하철 대비 시간이 더 걸리는 불편함은 있지만
출근길에 차안에서 어머니께 매일 전화를 드리는 기쁨이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2020년 4월8일 출근길에 어떤 연유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자간의 대화가 병자호란 직전에 사신으로 온 청의 장수 용골대에 대한 이야기에서 부터 삼번의 난, 조선의 북벌에 대한 애기까지 하게 되었다. 주로 어머니가 얘기를 하시고 내가 보조를 맞추어 대화를 이어 가는 방식이었다.
용골대를 맞아 오랑캐의 목을 베어 대의를 밝히자라는등의 허세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호란을 막을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오삼계가 삼번의 난을 일으킨것을 기화로 조선에서 거병했으면 성공했을수도 있었다는 말씀 , 효종은 북벌에 대한 의지가 있었지만 송시열은
말만 그랬지 실제론 북벌 의지가 없었다는 말씀을 하시고 송시열이 조선사회에 끼친 해악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송시열에 대해 그가 당쟁을 일으키고 주자학적인 관념론에 빠져서 실질이 없이 명분에만 사로 잡힌 정치를 했다는 사실에 입각해
평가를 하셨지만 우리집이 영남의 남인 집안이라는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것이다. 노론인 송시열에 대해 영남의 남인들은 원한이 깊어서 심지어
안동에서는 개를 시열이라고 이름붙힌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머니가 대단히 박식한것이야 새삼스러울것도 없지만 백수(白壽)의 연세에도 기억력이 조금도 감퇴되지 않으셔, 아들인 나와 지적인 대화를
나눌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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