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터키 주마간산기(트로이 2014.7월31일 아침)

낙산유정 2018. 2. 22. 11:06

트로이 관광

7.30일 에게해의 항구 도시 아이발릭에서 일박한후 7.31일 아침 일찍 트로이 관광을 했다(0750-0900)
트로이 유적지는 차나칼레 해협(영어 : Dardanelles)해협의 남쪽 어귀로부터 약 6.4km떨어진 트로아스 평야에 있는

히사를릭 (Hisarlik) 언덕에 위치해 있다.
호메르스의 유명한 대 서사시 일리아드 오딧세이중 일리아드에 서술된 트로이 전쟁의무대이다. 영화를 통해서든

일리아드에 나오는 신화적인 전쟁 이야기를 읽었든 간에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왕 메넬라우스의 왕비인 헬레나를 트로이로

유혹해 옴으로서 시작된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왕국간의 전쟁이자 신들의 전쟁이기도 한 이 유명한 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이 십년 전쟁을 호메르스라는 대 서사시인의 창작물로만 여겼었다. 오직하면 이 전쟁을 신화적으로 각색하여

대 서사시에 읊은 호메르스의 별명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쟁이 였을까?


이 유명한 유적지는 독일의 (현재 오스트리아) 부유한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레이만이 히사를릭 언덕을 1870년 발굴해서

세상에 드러낼 때 까지는 완전히 잊혀진 고대 도시 였다. 슐레이만은 발굴을 통해 이 유적지가 세월따라 9개의 지층으로이루어진 것을

발견했는데, 트로이 전쟁당시의 유적지는 2기 지층이라고 믿었다.후일 학자들이 밝힌 바로는 7기 지층이 (엄밀히 VIIa 지층) 트로이 전쟁의

유적지이다.1기 지층은 BC3000-2600, 7기a(VIIa)는 BC 1300-1190, 맨 마지막의 9기 지층은 BC85-AD500년대의 유적지이다.

과연 트로이 전쟁은 있었는가? 히타이트 제국의 외교문서에 의하면 미케네인들이 윌루사(히타이트어, 트로이로 비정됨)로 쳐들어 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미케네인들이쳐들어와 약탈한 것이 트로이 전쟁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또한 경제적인 문제로 전쟁의 원인을 추정해 보기도

하는데 다르다넬스 해협의 입구에 있는 트로이가 소아시아로 통하는 무역의 요충지이며, 이를 쟁탈하여 무역을 장악 할려는 것이 다툼의

원인이었다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만 트로이 발굴을 통해서도 대규모 전쟁의 흔적이 발견 되지 않아서, 전쟁이

일어 났다는데 대해 대단히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학자가 많다고 하며 , 있었더라도 소규모 전쟁이었는데 이것이

과장된 이야기로 발전했다는 설도 있다.


트로이 유적지를 발견한 하인리히 슐레이만은 우리나라 아동도서 위인전에도 등장하는 인물인데, 너무나 거칠게 발굴하여 유적지가

많이 파괴되어 연구와 복원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 졸속 발굴이었을 뿐 아니라 , 보물등 수많은 유적을 오스트리아로 반출해 간 인물로

터키에서는 도굴꾼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위)

그리스연합군과 트로이군과의 전장이라고 추정되는 평원. 평원너머로 에게해가 있다

(위)유적지 입구의 대형 목마.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현대에 세운진 것.사실 트로이 유적지는 돌무더기와 성곽의 잔해들 뿐이이서 고고학과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구경거리다.

 

 

 

트로이 1기 지층(BC3000-2600) 위 두 사진

 

 

 

 

 

 

BC1200년 경. 7기 지층에 있는 아크로폴리스의 성벽인데, 호메르스의 트로이

전쟁당시의 성벽이라고 인정된다.

 

 

 

 

 

 

 

오데온(소극장) 9기 지층(BC85-AD500)에 세워진 유적. 로마 황제 HADRIAN의해 AD124년에 중건되었다고 함

 

(위)BC 8세기 경의 우물

(위) TROY 성벽앞에서 아내와.이번 여행에 TROY는 예정에 없었으나

인원이 부족하여 타팀과 합류해서 여행한 덕분에 그팀의 코스에

있는 트로이를 여행하는 행운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