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4년 인도여행.타지마할.(12월18일 오전)

낙산유정 2024. 12. 18. 21:02

오늘 오전은 이번 북인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타지마할을 답사하는 일정이다. 0900경 인도전통 복장인
사리 가게에 들러 옷을 빌려 입었다. 나는 청바지 위에 윗도리만 빌려 입었는데 반해 아내는 붉은 사리에
머리장식까지 하고 나니 미모가 눈부셨다.
타지마할 입구까지는 일반 차량으로는 접근이 안되고  덮개가 없는 미니 전기열차를 타고 가야 했다.
0930경 동쪽 출입문을 통해 Main Gate인  Darwaza-i-Rauza(묘소의 문이라는 뜻)에 다다랐다.
 붉은 사암으로 된 건물이 아름답고도 장중하다.
다른 곳에 있으면 그 자체가 명품일 정도로 크고 작은 아치가 조화를 이루고 외벽의 문양도 아름다운
완벽한 대칭형 건물이다.
이윽고 十字形 수로가 있는 넓은 페르시아식 정원을 넘어 옅은 안갯속 흰 대리석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아름다움이 차라리 비 현실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건축물 TAJ MAHAL이다.
TAJ는 왕관, MAHAL은 궁전이라는 뜻이니 TAJ MAHAL은 왕관의 궁전이라는 이름이다.
무덤을  덮은 건축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영묘(靈墓)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세기의 사랑과 무갈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고 권력의 무상함이 서려있는  건축물, 그래서 끝없는 STORY가
만들어지는 곳을 나는 마주하고 있었다.
 

(영원한 사랑의 상징)

무갈(MUGHAL) 제국의 5대 황제 샤자 한(SHAH JAHAN : 재위 1628-1658)은 아내 뭄타즈 마할을 대동하고
데칸 고원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갔다. 이때  뭄타즈 마할(Mumtaz Mahal 1593-1631)은 만삭의
몸으로 원정에 동행했는데 샤 자한과의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무려 30시간의 난산 끝에 서거했다.
이때가 1631년 6월 17일이었고 황후가 된 지 겨우 3년 만의 일이었다.
전투 중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들은 황제 샤 자한은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지어 주겠다는 결심을 하고 1632년부터 TAJ MAHAL을 짓기 시작했다. 아내를 잃은 샤 자한은 
거의 1년 동안 정무를 파했다고 하며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한다
MUMTAZ MAHAL은 페르시아의 고위 귀족의 딸로서 남편인 샤 자한 황제와는 사촌( 내외종 :외사촌과 고종)간이다.
자한기르 황제의 황비이자  SHA JAHAN 황제의 어머니가 MUNTAZ MAHAL의 고모이고, MUNTAZ MAHAL의
아버지가 SHA JAHAN의 외숙인 관계다. MUNTAZ MAHAL의 원래 이름은 ARJUMAND BANU BEGUM이며
MUNTAZ MAHAL은 황후가 된 뒤에 황제 샤 자한이 부여한 존호(尊號)또는 경칭으로 가장 소중한자(MUMTAZ)의
궁전(MAHAL)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샤 자한이 미나 바자르( 궁중의 여인들을 위한 市場)에서
물건을 팔던 ARJUMAND BANU BEGUM을 만나 첫눈에 반했다는 야사의  LOVE LINE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
황제의 처남인 막강한 귀족의 딸이자 샤 자한의 외사촌 동생인 MUMTAZ MAHAL과의 약혼은 황제가문과
고위 귀족가문과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607년 둘은 약혼했는데 샤 자한이 15세, 뭄타즈 마할이 14세였다. 이로부터 5년 후 1612년 AGRA에서
결혼을 했는데 일부다처제인 이슬람문화권에서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의 2번째 부인이었다.
 1628년 샤 자한이 황제로 즉위한 후 그녀에게 CHIEF EMPRESS의 지위를 부여했다. 2번째 부인에게 이러한
신분을 부여한 것을 보면 샤 자한이 이 여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샤 자한은 첫 번째 세 번째 부인과는 혼인 관계를 유지만 했을 뿐 사랑은 주지 않았다.
SHA JAHAN황제에게 MUMTAZ MAHAL은 사랑하는 아내이자, 정사를 처리할 때 황제는 커튼뒤에
배석한 황후에게 의견을 구했다고 할 정도로 신뢰하는 국정의 동반자였다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 TAJ MAHAL이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아래와 같이 찬양했다
" 오 황제여
그대는 타지마할의 시간에 마술을 걸려 했습니다.
그대는 경이로운 화환을 짜서 
주검을 죽음을 전혀 모르는 우아함으로 덮었습니다"
 

(MUGHAL 제국의 영광)

TAJ MAHAL은 물이 흐르는 페르시아식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야무나 강변에 지었다. 
부지가 42 에이커(약 51,000평)에 이를 정도로 넓으며 남쪽의 MAIN GATE를 들어서면 十자형 
수로가 있는 약 300M 길이의 4분 양식 정원(CHAHAR BAGH)을 지나 흰 대리석으로 지은
영묘건물이 있다.
영묘건물의 서쪽에는 이슬람 모스크, 동쪽에도 완전히 같은 모양의 건물이 있는데 영빈관 용도이다.
영묘만 흰색 대리석 건물이고 나머지는 붉은 사암으로 지었다.
TAJ MAHAL은 건물과 정원이 모두 완벽한 대칭으로 배치되었으며 건물 자체도 대칭 구조다.
유일하게 대칭이 아닌 것은 SHA JAHAN과 아내 MUMTAZ MAHAL의 관뿐이라고 할 정도다.
CHAHAR BAGH식 정원은 꾸란에서 천국인 PARADISE를 상징하며, 영묘 건물 내.외벽 대리석에
상감된 꽃들도 천국을 상징한다. 타지마할 내부와 외벽에는 꾸란 CALLIGRAPHY가 
검은색 돌을 대리석에 상감한 기법으로 새겨져 있는데 심판의 날과 천국에 대한 약속이
내용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타지 마할은 지상에 구현한 이슬람의 천국인 것이다.
57/57M 높이 73M의 영묘 건물은 사방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똑같은 모양이다. 
영묘 건물을 호위하듯 기단 코너에 서 있는 높이 40M의 4개의 첨탑(MINARET)은 약간 바깥쪽으로
기울여 세웠는데 이는 만약 지진이 나서 첨탑이 무너질 때 바깥쪽으로 무너져 영묘 건물을 
다치지 않게 할 의도라고 한다. 영묘 건물의 기단에 올라갈 때는 마모를 방지하기 위해 얇은 천으로 된 
덧신을 신어야 한다. 기계가 없던 시절에 어떻게 무거운 대리석을 이렇게 정교하게 붙였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평면에도 쉽지 않지만 아치, 돔등 곡면에 바늘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대리석을
붙인 장인들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묘실의 중앙에는 뭄타즈 마할의 관이 있고 옆에 샤 자한의 관이 놓여 있는데 대리석관에 꽃과 
꾸란 구절을 상감하였다. 1층에 있는 이 관은 비어 있고 시신은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건물 내외벽의 흰 대리석에 아름답기 그지없는 꽃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녹색 옥, 붉은색 가넷이나 루비, 터키석, 벽옥, 홍옥, 흑요석등 보석, 준보석들을 중국,
아프카니스탄, 이란,예멘, 티벳, 중앙아시아 스리랑카등 아시아뿐만 아니라 벨기에등 유럽에서도
수입해서 장식했다고 한다.
대리석에 문양을 파내고 상감기법으로 준 보석을 잘라서 박아 넣었는데 이를 대리석 상감기법
(Pietra dura)이라고 한다. 타지마할의 벽면의 문양이나 검은색 꾸란 글귀는 모두 이러한 상감기법으로
만든 것을 직접 확인했다.
화가,석공, 보석 세공인등 약 20,000명의 인력 및 수많은 코끼리와 황소등을  동원해서 22년간 공사 끝에
타지 마할을 완성했다고 하는데, 현재 가치로 USD 63억 9000만이 소요되었다고 한다(WIKIPEDIA)
영묘건물 건축에 12년(1632-1633) 이 소요되었고 이후 부속 건물에 추가로 10년이 소요되어 총
22년이 걸려 전체 TAJ MAHAL이 완공되었다.
완공 후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 타지마할 건축에 동원된 장인들의
손목을 다 잘랐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 이는 완전한 낭설이라는 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STORY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창조, 각색되어 전설을 만들었을 것이다
MUGHAL제국은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말 까지가 전성기라고 할 수 있고
샤 자한이 TAJ MAHAL을 건설했던 17세기 초중반은 무갈제국의 최 전성기였다.
TAJ MAHAL은 무갈제국 전성기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 불가사의한 건축물은 샤 자한의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 제국의 영광과
강력한 왕권을 만 천하에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인 건축 의도도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권력 무상)

샤 자한은 말년에 아들들의 왕위 계승전쟁이 일어나 아우랑제브가 승리한 후 폐위되어
아그라성에서 8년 동안 유폐생활(1658-1666) 끝에 별세하였다. 아들 아우랑제브 황제는
父皇인 샤 자한이 TAJ MAHAL등 지나친 토목 공사로 국가 재정을 파탄 낸다는 명분으로
아버지를 폐위했다고 한다. 말년에 아들에 의해 감금되어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의
묘지인 타지마할을 매일 바라보다 죽은 샤 자한의 비극적인 생애가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한다. 
그도 아내 옆에 묻혔으니 TAJ MAHAL은 결국 자신을 위한 영묘도 된 것이다.

(환경오염)

인도의 환경오염은 심각하다. 타지마할을 감돌아 흐르는  야무나 강을 바라보니 온통 쓰레기 투성이다.
강물은 폐수로 오염되어 검은빛을 띠고, 모래도 오염되어 더러웠다. 옅은 안개가 낀 공기도 탁하기 그지없다.
인류의 유산인 타지마할을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위) MAIN GATE인 DARWAZA-i-RAUZA
(위) TOURIST MOVEMENT PLAN OF TAJ MAHAL COMPLEX. 동.서 .남문 3곳을 통해 입장할수 있다

 

(위) 사진. 영묘건물(MAIN MAUSOLEUM)을 배경으로

(위) 영묘 건물의 아치형 문. 꽃문양과 기하학적 문의가 상감되어 있다. 아치형 곡면에 대리석을 정교하게 이어 붙인 장인들의 솜씨가 놀랍다

(위 ) 건물외벽의 대리석에 꽃 문양을 돋을새김하고 윗 부분은 준 보석들을 상감기법으로 대리석에 박아 넣었다
(위) 꾸란 구절을 대리석에 상감 기법으로 새겼다.자를 위로 갈수 조금씩 크게 새겼다고 하는데, 눈에서 멀어질록 글자가 작아 보이는 것을 방지하여 동일한 크기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위) 관이 있는 영묘 내실의 화려한 장식.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감시의 눈을 피해 사진을 찍는다
(위) 영묘 건물 서쪽의 이슬람 모스크
(위)영묘건물에서 main gate방향을 바라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