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루에 올라(2012년 11월 10-11일 주왕산 청송, 부석사 여행) 낙산 조 영우
주산지를 관광한후 우리 서울 IMG 일행은 부산팀을 이별하고 청송 송소 고택을
구경한후,봉화 축서사, 달실(닭실)의 권 충제 고택을 들린후 마지막 여행지로
부석사를 돌아 보았다.
경북 북부지방은 들은 좁고 산은 깊어 수만석을 하는 큰 부자는 날수 없는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오직하면 들이 조금 넓다하는 상주 선산 사람들이 안동 봉화 처녀들은
시집오기전 쌀 서말도 못 먹었을것이라고 과장(?)했을까.
산 깊고 물 맑은 자연이 인걸을 낳았는지, 영남의 거유는 물산이 넉넉치 못한
심심 산골인 경북의 안동 봉화와 서부 경남에서 많이 배출 되었다.
퇴계와 서애 류 성룡, 학봉 김성일이 안동 출신이고, 우리 일행이 둘러 보았던
안동 권문의 불천위(不遷位)조상인 달실(닭실) 종택의 충제 권벌은 봉화 출신이다.
퇴계와 쌍벽인 경상 우도의 거유 조남명 및 남명의 걸출한 제자들인 내암 정인홍,
망우당 곽재우를 낳은 합천과 의령 및 그들의 활동 무대인 서부 경남 일원 역시
산 높고 골 깊은 고장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지방의 유수한 종택(宗宅))들은 대개 건물의 규모가 크던 작던간에 돈냄새가
나기 보다는 유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건물 배치와 조상의 학덕,유묵이나 유물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즉 가문의 경제력을 자랑하기 보단 가문의 범절을
나타내고 조상을 모시는 후손들의 정성으로 종택을 유지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기야 부자라 봐야 천석 정도를 할수 있는 지방에서 강릉의
선교장이나 담양의 소쇄원 정도를 지을 경제력이 있을리 만무 했을 것이다.
송소 고택은 99칸을 자랑하는 규모는 물론이고, 유교적 남녀의 생활 공간 구분에
따른 안채, 사랑채, 별채등 건물의 배치가 분명한 우리의 자랑스런 옛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99칸이라는 수치보다는 집을 지은 재목의 굵기, 각 건물의 크기와
짜임새, 아름다운 문살등을 볼때 가히 대 저택이라고 할만하며, 경북 청송골짜기에
이정도 저택이 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난다. 단지 이집은 문자향, 서권기가
(文字香,書卷氣)풍기는 경북의 여느 고택들과는 달리 돈 냄새가 물씬 난다는 느낌이
들며 이집을 지은 송소 심호택의 대단 했던 경제력을 상상해 본다.
오직하면 HOMEPAGE에 심부자댁이라고 소개 했을까? 사실 관계야 확인해
볼길이 없지만 청송 골짜기에서 이정도 집을 유지 할려면 수많은 노비와
소작농을 거느렸을것이 분명했을터… 이 집을보며 조선 말기의 경제력 집중 현상과
반상의 빈부 차이를 한탄해 보기도 했다.
이집이 조선 중기 정도에만 지어 졌어도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을것이 분명한데
연대가 오래지 않아(1880년 건축됨) 국가 지정 민속 문화재 정도가 된 것이
아닐까?
봉화 축서사를 둘러본후 마지막 여행지로 부석사를 둘러 보기로 하였다.
축서사를 가기전 먼산 선배가 축서사에서 내려다 보는 산군들의 조망과 부석사 무량수전
뜰에서 보는 경치를 비교해 보라고 하였다. 풍진에 찌든 속인이 어찌 평가 하리오만,
탁트인 높은 곳에서 멀리 혹은 가까이 군마(群馬)가 뛰어가는 형상으로 늘어선 산군(山群)들을
일망무제로 바라보는 조망자체는 축서사 대웅전에 마음이 더 가지만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는 전망을 더 치고 싶은 것은 탁트인 전망이 옛 건물들과 어우러지는
기막힌 풍치 때문이리라.
이번이 너 댓번째 부석사 구경이다.
20-30대에는 배흘림 기둥이 어떻고 주심포(柱心包) 양식이 어떻고 하는 서푼어치 지식을
동원한 풋내기 관광이었다면 40대에는 안양루 밑에서 햇빛이 공포(栱包)를 통과하면 공포가
부처의 형상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 감탄 하였다. 50 초반에 이르러서야 안양루에 각자된
김삿갓의 부석사 라는 한시에 공감하고 무량수전 보다는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는 산군들을
조망하는것에 시간을 보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 다시 그 김립의 한시를 보며 깊이 공감한 것은 낙산도 나이가 더 들었다는
애기인가?
다만 이전에는 안양루에 들어가 산군들을 조망하여 그 한시를 감상 했는데 지금은
들어 갈수가 없고 누각 옆에 서서 한시를 볼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 오히려
누각 옆에서 , 멀리 탁트인 일망무제의 경치를 바라다 보다가 한시를 읽다가 하니
더 깊은 감흥이 온다.
나는 늙기전에 안양루에 몇번이나 올랐으니, 내팔자가 김삿갓 보다는 나은 것인가?
김립, 부석사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 평생동안 겨를없어 명승지를 구경 못하다가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 그림 같은 강과 산은 동남으로 펼쳐있고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 천지는 부평초처럼 밤낮 없이 떠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 우주간의 이 한 몸, 물위를 떠다니는 오리같구나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는데.
(인터넷에서COPY함. 이 글귀는 원문과 한글 번역이
목각 된것이
안양루 안에 있으며 다행히,밖에서 읽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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