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공정과 청나라(2012년 1월에 쓴글을 2019년 7월에 BLOG에 COPY)
중국의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가진 국가는 청나라이며,
건륭제 치세인 1750년 경에 최대 판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몽골의 원나라를 거론할지모르나,여타 한국(汗國)을 포함한
몽골제국 전체는 당연히 청제국 보다 넓으나, 元과 청을 비교시는
청제국이 단연코 광대 하다.
건륭제때에 이르러 신강위구르 자치구가 청의 영토에 편입되었으며 티베트, 몽골에 대한 지배권이 더욱 공고히 되었다.이때 청의 영토는
현대 중국의 영토에서 몽골 공화국 및 러시아의 연해주,
발하슈호(LAKE BALKHASH) 부근의 카자흐스탄 및 키르키즈스탄의
일부 지역을 더한 지역이다. 말하자면 현대 중국 영토의 골격은
이때 형성이 되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영토를 비교해 보자면, 명의 영토에서 청해성
(칭하이,靑海),티베트,신강(新疆,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및내몽골
외몽골을 합친 것이 청의 영토이다. 만주 지역 역시
한, 당, 명 등 통일 왕조의 강성기때를 제외하면 정치적으로
독립된 지역 이었던 만큼, 한족지배하의 중국 영토라고는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발해, 요, 금 등 이민족의 무대였슴)
즉 중국은 만주족(여진족)의 지배를 받아들이면서 영토가 2배로 넓어진 선물을 얻게 되었는데, 이 광대한 영토가 대부분 오늘의 중국이
되면서, 요즈음 동북 공정이니 서북 공정이니 하는 생떼거지를 쓰야만 하는 상황이 청나라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수 있다.
청나라는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중국을 한족 위주로
보는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인 소 중화주의에서,다민족을 어우르는
대 중화 주의를 내세웠을 뿐 아니라, 만주 및 몽골의 칸이
중국 황제를 겸하는 형식의 지배권을 확립하게 된것이다.즉 청나라의
황제는 중국의 황제인 동시에 만주 및 몽골등 유목민의 칸이었던
것이다.
또한 청은 제국을 만주와 중국내지를 아우르는 직접 지배지역과
간접지배지역인 번(藩, 외몽골,티베트,위구르)으로 대별하여 통치
하였는데, 이것이 현대의 중국의 성 및 자치구제로 이어져
내려온다고 볼수 있다.
아뭏던 중국은 만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영토가 두배로 넓어지고, 이 넓은 영토 및 백성들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할려다 보니
오늘날의 동북 공정 같은 역사 통합 작업이 필요하게 된것이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만약 명나라가 저 한줌도
안되는 만주족에 나라를 바치지 않았다면, 중국의 동북 지방은
만주족,몽골족이 지배하는 하나의 국가가 있었을 것이고,
티벳은 달라이 라마가 지배하는 독립 국가로서, 신강 지방은 천산
산맥 좌우의 영토를 합하여 東 투르키스탄 독립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 틈바구니속에서 우리도 간도를 우리땅이라고
우길(?) chance도 있었을 것이고…
또한 중국 학자들이 동, 서북공정을 하는 수고도 덜었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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