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13

백수(白壽)가 되신 어머니의 기억력

COVID-19 감염에 대한 염려로 3월부터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고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지하철 대비 시간이 더 걸리는 불편함은 있지만출근길에 차안에서 어머니께 매일 전화를 드리는 기쁨이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2020년 4월8일 출근길에 어떤 연유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자간의 대화가 병자호란 직전에 사신으로 온 청의 장수 용골대에 대한 이야기에서 부터 삼번의 난, 조선의 북벌에 대한 애기까지 하게 되었다. 주로 어머니가 얘기를 하시고 내가 보조를 맞추어 대화를 이어 가는 방식이었다.용골대를 맞아 오랑캐의 목을 베어 대의를 밝히자라는등의 허세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호란을 막을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오삼계가 삼번의 난을 일으킨것을 기화로 조선에서 거병했으면 성공했을수도 있었다는 말씀 , 효..

내 생각 2020.04.10

유세차(維歲次) 遺憾(2011년7.14일 쓴글을 BLOG에 COPY)

維歲次 유감(遺憾) 인생의 각 단계에서 중요한 의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冠婚喪祭 이다. 冠禮는 고3 내지 대학에서 단체로 간단한 선물하나 주는 성인식으로 대체 되어 없어진지 오래이고 , 婚禮 역시 거의 서구식으로 바뀌어 전통의식은 剝製化 되었다. 비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은 喪禮와 祭禮 하겠는데 , 죽은이와 결별하는 상례의식은 시대에 따라 간소화 내지 변천을 계속하되, 아마 극단적으로 간소화 하거나 생략하기는 힘들것이다.그러나 제례의 경우는 현재의 추이로 짐작컨대 앞으로 없어지거나 아주 간소화되어 유명무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朱子家禮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현대에 들어서면서 제사는 없어진지 오래인데, 아직까지 우리에게 중요한 의식으로 지속되고 있는 현상을 미풍양속이라고 볼수도 있으나, 주변 ..

내 생각 2019.09.15

사라진명절 중양절

사라진 명절-중양절 조영우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 또는 중구 라고 한다.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重日)은 모두 명절인데, 3.3일(삼진날), 5.5일(단오) 7.7일(칠석), 9.9일(중양절)이 모두 양의 숫자가 겹치는 명절이며, 특별히 9월 9일을 중양이라고 하며 구(九)가 겹친다는 의미로 중구(重九)라고도 하는 것이다. 홀수는 음양오행에 있어서 양(陽)이며 짝수는 음(陰)의 숫자이다. 따라서 양의 수(홀수)가 두번 겹치는 날은 좋은 날로 간주해서 과거 전통시대에 모두 명절로 쇤 것이다. 중양절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이며 당송 시대에는 중추절 보다 더 큰 명절로 지켜 졌다.중양절에 중국 사람들은 산위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며 국화주를 마시는 풍속이 있다고 어떤 중국어 교재에서 본일이 있다 우리나라..

내 생각 2019.07.24

김일성왕조의 법도(2011.12월작성)

어제 죽은 김정일의 이름자는 正은 어머니 김정숙의 정을 따고,日은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예부터 우리는 집안 어른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그 이름을 따서 작명하는것을 삼가해 왔는데, 이를 기휘(忌諱) 또는 피휘( 避諱) 라고 한다. 기휘는 우리의 작명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것으로 아버지 할아 버지는 물론 가까운 집안 어른들의 이름자는 쓰지 않는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그런데 김일성의 집안은 기휘는 커녕 김정일은 아버지의 일자를 따고, 김정일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정자를 따서 이름을 짓는등 ,日 또는 正자는 ROYAL들 만이 쓰는 성스러운 字라고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이들의 고향인 관북지방은 유교적인 풍습이 약하여 쉽게 전통을 무시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뭏던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자를 따서 작명하..

내 생각 2019.07.24

일본이 자펜이 된 까닭(2011년 11월 18일 작성)

오늘 동아 일보 칼럼 " 광화문에서" 조성하 기자의 "일본, 왜"독도"라는 아래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 국명은 세 개다. 우리말 ‘일본’, 영어로 저팬(Japan), 일본어로 니혼 혹은 닛폰(日本). 그런데 궁금증이 있었다. ‘저팬’의 출처다. 만나는 일본인마다 물었지만 잘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일본인이 누군가. 왕을 신으로 추앙하고 그 아래 똘똘 뭉쳐 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켜 아시아 대륙을 총칼로 점령한 제국주의의 신민 아니었던가. 그런 그들이기에 국명에 대한 무관심이 내겐 더 큰 의문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해답 사냥에 나섰다. 답은 위키피디아에 있었다. 이 인터넷 백과사전에 대해서는 정확성 논란이 상존한다. 그래서 ‘확답’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상식선에서 부족함이 없어 소개한다...

내 생각 2019.07.24

폐백고(幣帛考)

(2011년 11월에 쓴글을 2019년 7.24일에 BLOG에 COPY함)국어 사전에는 폐백을” 1. 예의를 갖추어 보내는 물건.2. 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대추나 포 따위(또는 그러한 예식을 이르는말 : 최근에는 시류를 반영하여 이러한 의미가 추가 되었다) 3. 제자가 처음뵙는 스승에게 드리는 예물” 등이라고 되어 있다. 이밖에 신하가 임금을 만날 때 드리는 예물도 폐백이라고 하는등 폐백은 원래 예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결혼식후 폐백을 드리게 되는데, 이말에서 알수 있듯이 원래 폐백은 드리는 물건이지 의식은 아니다.전통시대에는 신부는 혼례이후 신랑집에 가서(신행 : 新行) 시부모를 뵙게 되는 예를 치르게 되는데 이때 드리는 대추나 포, 닭 같은 것이폐백이다. 며느리가 시부모..

내 생각 2019.07.24

동북공정과 청나라

동북 공정과 청나라(2012년 1월에 쓴글을 2019년 7월에 BLOG에 COPY) 중국의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가진 국가는 청나라이며, 건륭제 치세인 1750년 경에 최대 판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몽골의 원나라를 거론할지모르나,여타 한국(汗國)을 포함한 몽골제국 전체는 당연히 청제국 보다 넓으나, 元과 청을 비교시는 청제국이 단연코 광대 하다. 건륭제때에 이르러 신강위구르 자치구가 청의 영토에 편입되었으며 티베트, 몽골에 대한 지배권이 더욱 공고히 되었다.이때 청의 영토는 현대 중국의 영토에서 몽골 공화국 및 러시아의 연해주, 발하슈호(LAKE BALKHASH) 부근의 카자흐스탄 및 키르키즈스탄의 일부 지역을 더한 지역이다. 말하자면 현대 중국 영토의 골격은 이때 형성이 되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영토를..

내 생각 2019.07.24

중국 인명 지명의 한국어 표기

중국 인명 지명의 한국어 표기 낙산 조영우 북경 올림픽 중계 방송을 들을 때 ‘여기는 베이징 궈지아 티위창’입니다 라고 방송 중간중간에 말미에 빠짐없이 애기하는 것을 들었다. 북경 국가 체육장인가? 베이징 궈지아 티위창인가(北京國家體育場)? 차라리 북경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입니다 라고 했었으면 어땠을까? 대 흥안령 산맥인가 따이 싱안링 산맥 인가, 요하인가 랴오허 인가? 네이멍구인가? 내 몽고인가 ?동북 삼성인가, 둥베이 산싱인가? 국립 국어원에서는 다음과 같이 중국 인.지명의 표기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현대 과거는 1911년 신해 혁명을 ..

내 생각 2019.07.19

안양루에 올라(2012년 11월11일 )

안양루에 올라(2012년 11월 10-11일 주왕산 청송, 부석사 여행) 낙산 조 영우 주산지를 관광한후 우리 서울 IMG 일행은 부산팀을 이별하고 청송 송소 고택을 구경한후,봉화 축서사, 달실(닭실)의 권 충제 고택을 들린후 마지막 여행지로 부석사를 돌아 보았다. 경북 북부지방은 들은 좁고 산은 깊어 수만석을 하는 큰 부자는 날수 없는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오직하면 들이 조금 넓다하는 상주 선산 사람들이 안동 봉화 처녀들은 시집오기전 쌀 서말도 못 먹었을것이라고 과장(?)했을까. 산 깊고 물 맑은 자연이 인걸을 낳았는지, 영남의 거유는 물산이 넉넉치 못한 심심 산골인 경북의 안동 봉화와 서부 경남에서 많이 배출 되었다. 퇴계와 서애 류 성룡, 학봉 김성일이 안동 출신이고, 우리 일행이 둘러 보았던..

내 생각 2019.07.19

왕의 묘호

왕의 廟號, 祖 와 宗 조 영우 묘호란 임금이 죽은후 神主를 종묘에 봉안할 때, 신주를 모신 공간인 神室에 붙인 이름으로 태종 세종등으로 불리는죽은 임금의 호칭이다. 임금은 살아 있을때는 주상, 금상, 상(上)등으로 지칭되다가 죽은후에 세조 숙종등으로 불리게 되는것이다.묘호는 철종,인조등두글자로 구성이 되며, 앞의글자는 諡字로서 사후 그 공덕을 칭송하여 붙이는데, 왕의 일생을압축하는 자를 선택하며, 뒤의 한자는 종법에 따라 祖 나 宗을 붙인다. 어떤 임금은 죽고 난뒤에 조로 불리며 어떤 임금은 종으로 불릴까? 그러면 조와 종의 기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 창업지군칭조, 계체지군칭종(創業之君稱祖,繼體之君稱宗.). 건국한 임금은 祖이며, 계승한 임금은 宗이라는 원칙이다 둘째 : 有功曰祖,有德曰宗 ..

내 생각 2019.07.16